본문 바로가기
언희의 관람생활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 상처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by 언어의 기쁨 2023. 2. 28.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의 메인 포스터

인생이 지칠 때가 있다. 어느 순간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때, 나의 모든 일이 허무하고 의미 없게 느껴질 때,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드라마는 어느 봄날 갑자기 인생 파업을 선언하고 떠난 여름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 쉬어 가도 된다고 말한다.

 

여유가 주는 풍족함

여름의 출근길은 언제나 비슷하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부대껴 움직이고 가끔 짜증스러운 얼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그런 여름의 언제나 같은 출근길, 이어폰으로 흘러 들어오는 음악도 위로가 되지 않는 어느 날 급하게 지하철을 내리려는 어떤 아저씨의 짐에 걸린 이어폰 때문에 여름은 뜻하지 않게 지하철에서 내리게 된다. 지각을 걱정하며 팀장에게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 여름의 발 앞으로 분홍빛의 물체가 떨어진다. 여름이 고개를 돌리자 저기 멀리 벚꽃이 만개했다. 계절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몰랐는데 어느새 봄이다. 여름은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회사를 관둔 여름은 무작정 집을 정리하고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시작하고 그러던 중에 안곡에 도착한다. 안곡이 마음에 들었던 여름은 안곡에 1년 동안 살아 보기로 하고 모종의 사건으로 버려 지다시피 한 당구장 건물에서 지내게 된다. 도서관에서 만난 대범과 봄, 봄을 좋아하는 재훈, 대범의 동료 지영, 여름이 살게 된 당구장 건물주의 아들 성민을 비롯한 안곡 마을의 사람들과 부딪히며 또 관계를 맺으며 안곡에서의 삶을 만들어간다. 안곡에서의 삶은 늘 쫓기며 살던 시절과는 완전히 반대된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는다. 안곡 사람들의 삶도 여름과 그리 다르지 않다. 여유가 주는 풍족함 속에서도 각자의 고민이나 아픔이 드러나고 같이 해결해 나가면서 마을 사람들과 여름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 진다. 그러던 중에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여름과 대범은 사건을 쫓기도 한다.

 

 

각자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 곧 나와 같은 사람들 이야기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의 캐릭터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윗사람에게 항의하지 못하고 묵묵하게 일하는 여름,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과 관계하는 게 힘든 대범, 알코올 중독과 도박 중독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할머니와 동생 하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봄,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고 부모님의 무관심에 힘들어해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에서도 또 다른 차별을 겪다가 자신에게 다가와준 봄을 좋아하게 되는 재훈 등 각자 아픔이 있지만 또 그만큼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 외에도 안곡에서의 평온한 삶이 지겨워 서울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지영과 철물점을 운영하며 아들 준과 함께 살아가는 안곡리의 마당발 성민, 아픈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창수와 명숙까지 어느 순간은 이기적이었다가 또 어느 순간은 한없이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나도 그들 사이에 선 사람이 되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외지인인 여름을 경계하다가도 한 마음이 되어 돕는 사람들, 여름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움이 되려는 사람들, 마지막 사건의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드라마 안에서 나쁜 캐릭터는 없다. 다만, 가끔씩 이기적인 얼굴을 드러내지만 그것마저도 곧 다른 얼굴로 탈바꿈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아름다운 색감과 선율이 흐르는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커피프린스 1호점>,<트리플>,<치즈 인더 트랩> 등을 연출하며 청춘 드라마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윤정 PD가 연출을 맡았다. 바닷가 마을 안곡의 여름 풍경을 아름다운 색감으로 담아낸다. 푸른 풍경과 따뜻한 빛의 사용으로 전체적으로 포근한 느낌으로 연출된 화면은 드라마의 내용만큼이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청량한 공기의 질감까지도 빚어낸 연출은 계절에 관계없이 보는 이를 여름 한 가운데로 데려간다. 아름다운 화면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OST도 드라마를 한층 빛나게 만들어준다. 트와이스의 지효, 더보이즈, 엔하이픈, 우주소녀의 설아, 아이칠린의 지윤 등 밝고 통통 튀는 노래에 어울리는 아이돌부터 프롬, 바버렛츠의 경선 등 OST 강자와 이윤정 PD와 인연이 깊은 티어라이너, 로우엔드프로젝트, 금준현, 황인혁과 같은 새로운 인물들이 OST를 가득 채운다. 대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미디움 템포의 곡이 주류를 이룬다. 삶의 여유를 이야기 하는 드라마처럼 음악도 역시 여유롭고 다정하며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특히 OST 중 여섯 번째로 공개된 티어라이너의 'We Swim in Dreams'는 허재훈 역을 맡은 방재민이 피쳐링해 극의 활력을 더했다. 방재민은 고등래퍼 시즌 1과 시즌 2, 쇼미더머니 시즌 10에 출연한 바 있는 래퍼이자 배우이다. OST에서는 랩이 아니라 노래를 불렀는데 봄을 짝사랑하는 소년 답게 풋풋하고 청초한 목소리로 첫사랑의 설렘을 잘 표현해냈다. 이외에도 모든 노래들이 여름날, 청춘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잘 담아내는 이지리스닝 곡들로 채워져 있어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싶다면 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