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5월,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다.
코로나가 유행한 이래로 한 번도 제대로 된 여행을 한 적 없으니, 무료한 나의 일상에 가끔 일어난 이벤트조차 사라진지 3년이 지났다. 적어도 일년에 한번, 많으면 계절마다 한번씩 찾았던 제주였는데 이제는 좋았던 감각만 남았고 기억은 희미해졌다. 가끔 사진을 찾아보면 아, 그랬었지 하는 정도.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기분과 닮았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마침내 재회하기로 했다.
무작정 비행기 표부터 끊고, 숙소까지 예약해버리고 나니 가슴이 떨렸다. 진짜 간다, 제주도.
02. 호의가 악의로, 사람의 마음을 믿는 어리석음
모든 호의가 보답 받지 못하지만 모든 호의의 보답이 반드시 또 다른 호의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 기본적인 이야기는 배울 때마다 아프고 또 다시 망각하고 다시 배우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그때의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때의 날씨, 어둑한 저녁에 밝게 빛나던 조명, 아이들의 웃음소리, 마인크래프트를 하던 통통한 손가락, 걱정 말라던 가벼운 목소리, 걱정이 섞였지만 분명 들떴던 언니의 목소리, 다시 돌아오는 길에 들리는 노파심,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던 선택. 나의 기억은 당신의 주장 밑으로 압축되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오로지 당신의 목소리, 당신이 기억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것.
당신의 처음 의도가 호의였어도 당신의 마지막은 악의였음을 나는 기억한다.
번들거리던 눈동자, 점잖을 가장한 목소리, 끝내 비웃던 입 꼬리, 악의로 똘똘 뭉쳤던 발화, 낭떠러지로 무심하게 내민 손의 촉감까지도. 너의 면전에다가 말해 줬어야 했는데
"이거 보기드문 생양아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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